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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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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일 동짓날 이 글을 씁니다. 밤새 내린 눈이 이곳 천봉산 골짜기에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놓았습니다. 오전 내 내리든 눈이 점심때가 되어서 멈추더니 밝은 햇살이 쌓인 눈에 반사되어 세상을 더 밝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인 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시고 그 위에 성령의 은혜로 풍성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곳 천봉산 골짜기(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에 들어 온지도 3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들어와서 단풍 속에 물들었던 시간이 꿈처럼 지나가고 지금은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그동안 사랑으로 관심 가져 주시고 기도로 힘이 되어 주신 분들과 교회 앞에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5월 초에 폐암4기로 최종 진단받으면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거짓말처럼 참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마음은 3월에 CT검사를 통해 폐암3기 이상일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담담했던 마음보다 더 편한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결심이나 수고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이요 평강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연약한 마음에 많이 갈등했을 것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만 바라보면 된다는 안도와 담대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몸 이곳저곳에 전이된 암이 점점 거센 통증을 가져다주면서 주님, 통증 없이 데려가 주세요.”라는, 기도라고 할 수 없는 절망의 외침이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폐암으로 진단받고 지금까지 한 번도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믿음이 나를 굳건히 붙들고 있어서가 아니라 15년 동안의 선교지의 삶을 병으로 인해 내려놓고 보니, 제 삶의 모든 부분이 그냥 이대로 주님 품에 안기고 싶을 만큼 지쳐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통증을 견딜 수가 없어서(특히 전이된 척추와 오른쪽 턱뼈 그리고 합병증으로 통풍이 재발), 할 수 없이 집 근처에 있는 상계 백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서 방사선 치료와 통풍 치료를 받았습니다. 퇴원할 당시에는 방사선 치료 후유증이 너무 심했습니다. 입 안의 오른쪽 침샘은 막혀서(회복이 어려울 거라고 진단) 새벽이면 입 안은 물론이고 목구멍까지 모두 말라서 고통스럽게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셔야 겨우 견딜 수 있었고, 미각도 90%나 잃어버려서(역시 회복이 어려울 거라고 진단) 무엇을 먹어도 맛을 알 수 없고 매운 것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체중은 20kg이나 줄었고 통증은 골반까지 퍼지면서 10m도 걷기 어려운 상황에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숨 쉴 때마다 골반 뼈가 쥐어짜듯이 조여드는 통증은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숨 쉬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곳 천봉산(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왔을 때는, 몸은 망가질 때로 망가져 있었고, 마음도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오전에 산속을 산책하는 시간이 있는데 10m도 걷기 힘든 저로서는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환우들이 산책 나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마음껏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주간하고 몇 날이 지났습니다. 걸음걸이가 조금은 나아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숙소에서 예배당과 식당을 오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5분 이상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 날(온지 10일 정도 된 날) 이곳 원장님께서 환우들 산책을 인도하시면서 저보고 한번 도전해 보시죠!”라고 산책을 권하는데 마음에 한번 가봐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초가을 날씨는 화창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나뭇잎이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면서 산책길을 나섰습니다. 오르막 입구에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 500m 정도를 갔을까 온 몸에 아픈 통증이 엄습하면서 괜히 왔다는 후회가 쉴 새 없이 밀려들었습니다. 무릎이 아파 주저앉을 수도 없고 엉거주춤 대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 한 채 한발 한발 산 중턱을 도는데 왜 그렇게 멀고 괴로운지... 산책길 중간 중간에 놓여 있는 벤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이면 50분이면 도는 그 길을 근 2시간 가까이 걸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침대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다음 날부터 제 몸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픈 것은 여전한데 견디기 힘든 통증이 아니라 뭔가 회복되는 통증(약간은 기분이 up되는)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도 힘들기는 비슷했지만 역시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산책길을 혼자서(남들보다 훨씬 긴 시간이긴 했지만) 한 바퀴를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던 상황에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조금씩 미각이 돌아오면서 맛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침샘이 말라 새벽이면 그렇게 고통스럽게 잠을 깨야 했었는데 입 안 마르는 것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어떤 날은 아침까지 기분 좋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이곳에 온지 불과 15일 안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몸은 거의 80% 이상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새로 온 환우들이 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갖는 분들이 생겨나고 함께 회복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험합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진통제와 소염제를 복용하고 있지만(조금씩 줄여가는 상황),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암으로 진단받고 선교지를 떠나 올 때 제 마음은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쓸쓸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할 때에도, 이곳 치유센터로 오는 길에도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저의 참담한 심정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제가 떠나 온 중국의 도시와 시골 마을과 그곳 사람들을 다시 마음에 품기 시작했고, 중앙아시아 눈 녹은 물을 먹으며 양치는 목동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가보지 않은 몽골의 초원에서 말달리는 사람들을 마음에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내일 나에게 닥칠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이 순간 제 마음에 다시 꿈을 꾸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참으로 지금까지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여정에는 수많은 기도의 손길, 도움의 손길, 사랑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년 가까이 부족한 저희 가정을 위해 함께 해 주신 분들과 교회들이 있었고, 가까이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저와는 아직 얼굴도 한 번 마주 하지 못한 분들의 귀한 섬김의 손길과 교회들이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부족한 저를 위해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셨고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이 귀한 은혜가 저로 하여금 다시 회복의 기로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극히 낮은 자리까지 오셔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이 이번 성탄절에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사는 우리들의 손길을 통해 이 땅에 핍박받고 소외된 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2015년 새해는 우리 모두가 더욱 복의 통로가 되어 이 땅의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141222

 

석원제 백현옥 선교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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